![]() ![]()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동아일보사 |
곰사진과 숲에 이끌렸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시도하다 수면으로 접은 지가 있어 빌 브라이슨의 책을 잡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몇 장을 넘기며 종주의 맘을 굳혔다.
한반도 두 배 길이가 넘는 애팔래치아 산 길. 그 무모해 보이는 짓을 브라이슨은 친구 카츠와 시도한다. 책의 재미는 막돼먹은 카츠 아저씨다. 배낭이 무겁다고 가져온 식량을 내버리고, 가는 곳 마다 여자들에게 직접거리고 그리고 ‘감사’하다는 한 마디를 쓸 줄 모르는 뚱뚱하고 예의 없는 카츠. 브라이슨의 노련한 글 솜씨 탓도 있겠지만 읽는 내내 카츠아저씨는 웃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가 등장하지 않는 브라이슨만의 산행에서는 교육적이긴 하나 책의 흥이 반감된다. 하지만 카츠는 다시 돌아온다. 산행 후 “현실의 세계, 즉 주유소와 월마트, K-마트, 던킨 도넛츠,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 에 대해 냉동식품과 정크 푸드로 살을 찌워온 카츠가 일갈을 날린다. “제기랄, 흉측하네.” 이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토로이기도 하다. 카츠는 산행을 통해 자신이 집착해왔던 것이 어떤 흉물인지를 보게 된 것이다. 브라이슨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의미를 “상실”에서 찾는다. 언제든 거리를 둘 때만 그것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는 일리다. 오만도, 집착도, 요란함도, 불필요함도.... 이후 카츠는 전과는 달리 알코올에 대한 집착도 끊고 미국산 쓰레기들에 거리를 두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브라이슨은 산길을 걸으며 미국 현대사와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뒤얽힌 얘기를 들려준다. 단순하게는 트레일을 보존하려는 사람들과 개발이익으로 재미를 보려는 사람들간의 충돌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그 갈등의 바깥에는 관심 없는 다수 미국인들이 존재한다지만. 브라이슨은 전자의 입장이지만 사람의 통행을 완전히 막는 극단적 보호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고 싶어 한다. 그가 보기에 자연 파괴의 원흉은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이다. 산림청은 산림을 보호한다는 명패아래 보호지역에 벌목업체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건설해 주는 것이 주요 사업이다. 공단은 예산을 핑계로 공원의 동식물의 멸종을 수수방관한다. 열 받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 미국인 대부분이 그렇다고 악당들은 아니다. 대피소에서 만나는 산행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온기. 거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트레일과 대피소의 관리, 트레일이 지금과 같이 보존되는 이유는 산길을 사랑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과 봉사에 힘입고 있음을 브라이슨은 누누이 강조한다.
곰이 덮쳐올까 싶어 조마조마 잠 못이루는 브라이슨. 친구의 공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잠을 자는 카츠. 이 ‘뚱뚱보 겁쟁이 커플’이 헐떡이며 걸어가는 <나를 부르는 숲>을 한 번 잡은 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숲으로 산으로 걷고 싶다. 나의 벗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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