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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책/소설

괴테 판 세익스피어 : 친화력-괴테

by 바다기린 2010. 9. 27.
친화력친화력 - 10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래현 옮김/민음사
에두아르트와 샤로테는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돈 많고 늙은 아줌마, 아저씨와 결혼하게 된다. 고맙게도 그 늙은 아줌마, 아저씨는 빨리 죽어준다. 그후 그들은 재결합한다. 신혼생활은 잠시, 에두아르트는 둘의 집에 실업자인 친구 대위를 불러오고 싶어하고, 샤로테는 사고무친으로 돌봐주고 있는 그녀의 조카-오틸리에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남편의 요구를 수락한다. 그들의 이런 결정에는 당시 유행하던 화학이론이던 친화력을 실제 인간관계에서 실험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친화력>은 각기 두 개의 원소로 분리될 수 있는 두 개의 물질이 서로 혼합될 때 원래의 결합을 버리고 다른 물질의 원소와 새로이 결합하는 현상을 일컫는 화학 용어를 뜻한다. 그들은 샤로테를 A, 에두아르트를 B, 대위를 C, 오틸리에를 D로 상정하여 B와 C가 많은 시간을 같이하면, A와 D가 가까워질 것이라 예견한다. 그렇지만 “이야기되어진 모든 낱말은 반대의 의미를 불러일으킨다.”(188) 그들은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가까워지게 된 것은 A와C, B와D. 그리고 두 사람은 살고 세 사람이 죽게 된다. 이 X는 누구일까? 즐거움와 슬픔을 동시에 부여해주는 이 X의 역할과 서술에서 능글맞으면서도 원숙한 괴테를 만나게 된다.
삶을 역정을 고루 치뤄 낸 노회한 괴테는 사랑에 대해 노회하지 않은 이런 말을 전한다.

 사랑이 없는 삶, 사랑하는 이가 가까이에 없는 삶은 하나의 <삼류희극>이요, 서투르고 시시한 서랍연극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서랍에서 하나씩 차례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고 다음 것으로 넘어간다. 좋고 중요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모든 것이 별로 연관성이 없다. 우리는 항상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아무데서나 끝내고 싶어한다.(240)

소설 또한 노회하지 않고 통통 튀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괴테가 “《친화력》을 발표했을 때, 아이엔베르크 M. von Eyenberg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흉년에 빵집에 몰려들듯이> 서적상들이 쇄도할 만큼 《친화력》의 선풍은 대단한 것이었다”(321)고 한다.투르니에는 “원숙의 절정”이라고 이 작품을 평한다(이 작품은 괴테가 60세에 되던 해에 발표되었다). 토마스 만은 이 소설을 가리켜 <세계적 소설 예술의 진주>라고 평했다고 한다.(328)
  이 책에 대한 나의 정의를 한 마디로 하자면 “괴테 판 세익스피어”라고나 할까. 줄거리상의 통속은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며 아름답고 원숙한 소설로 변모한다. 투르니에의 글을 보고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 읽다가 만 《파우스트》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친화력》이 단편으로 삽입될 예정이었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언제가 될는지 알 수는 없다.

* 조금 더 《친화력》과 괴테에 대한 뒷얘기를 듣고 싶다면, 미셸 투르니에의 독서노트《흡혈귀의 비상》(이은주 옮김, 현대문학, 2002)을 참고해도 좋을 듯. 2008
http://foretderobin.tistory.com2010-09-27T14:15:09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