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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책/여행

전주에서 하루 걷기...

by 바다기린 2011. 3. 16.
재미있는 전주 이야기재미있는 전주 이야기 - 8점
강준만.성재민 지음/인물과사상사

 

 

 

전주에 다녀왔다. 전주...전주는 언제고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김영민 선생의 전주 산책과 콩나물국밥에 대한 일화가 늘 한켠 자리 잡고 있었고, 이 책 <재미있는 전주 이야기>를 보고는 마음을 굳힌지 오래였다. 그런데 막상 가는 날  책을 챙기는 걸 잊었다. 오래전에 본 터라 기억은 도통 도움이 되지 않았다.

충주에서 전주행 버스를 탔다. 유성에서 쉬어갔다. 주위의 높은 건물과 비까번쩍하는 건물들과 달리 터미널은 허접했다. 조립식 건물에다 화장실은 오물로 범벅이었다. 소변기에는 이미 두 사람이 열중 ‘쉬’ 자세를 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쪽을 가려니 ‘찰싹’ 찝찝한 소리가 밟혔다. 소변기를 포기하고 금방 사람이 나온 칸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내려가지 않았다. 큰 일이라도 보았다면 낭패였으리라 싶어 얼른 빠져나왔다.

왜 주위건물들에 비해 이런 공공시설은 이토록 엉망똥통인지. 버스회사들이 대부분 사기업들이고 마지못해 터미널이 만들어지고 관리되다보니 대부분 조야하고 더러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주위 화려한 건물들의 주인들은 분명 이 버스 이용객들에 의해 수입을 올리는데 터미널에 대해선 손톱에 낀 때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듯해 화가 치밀었다. 유성은 다시 볼일이 없었으면 한다.

전주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리니 대문짝만한 크기의 간판을 단 여러 상점들이 오징어잡이 배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 낚시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전주게스트하우스까지 거리를 보니 2.7km 였다. 이 정도는 걸어가도 괜찮다 싶어 걷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요란은 끝나있다. 을씨년스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무서울 만큼 고즈넉하고 사람이 드물었다. 도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드문드문 비어있는 곳이 많았다. 40분정도 걸었을까. 명동 같은 곳이 나왔다. 터미널 앞과는 달리 화려한 포장이었지만 요란스럽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선 곳은 전주 CGV. 다시 지도를 살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는데 근 한 시간이 걸렸다.

가져온 과일로 아침을 메웠다. 10시 반에 약속이 있어 한 시간 반쯤 여유가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널린 지도를 보고서야 이곳이 ‘경기전’ 과 ‘한옥마을’ 바로 앞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혼불>을 읽지는 않았지만 우선은 ‘최명희 문학관’부터 가보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1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었다. “공사중”이었다. 방향을 돌려 경기전으로 향했다. 바로 앞에 쪽문이 있었다. 경기전은 조선시대 서울 이남지역에 유일하게 궁궐식으로 지어진 곳이라 하는데 이곳도 일부였지만 “공사중”이었다. 먼 발치에서 태조 이성계의 초상을 보았다.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게끔 만들어놓았다. 문과 전을 잇는 길에 “Road of God"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God? 이성계의 왕위 찬탈과정이 스쳐 지나갔다. 일반 국사에서는 낯선 얘기겠지만 당시 이성계가 정권을 획득할 수 있는 배경에는 몽고(원)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가 한때 몽고의 침입을 받았던 것과 이후 국내정치에서 몽고의 간섭이 계속되고 영향력이 적지 았다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이성계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정치세력과 결탁을 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다행히도 곧 원은 붕괴되고 명이 들어서니 이성계의 몽고와의 친정관계와 결탁과정은 자연스레 역사 아래 묻혀버렸다. 조금 더 시선을 틀면 고려의 입장에서 이성계는 외세와 결탁한 첩자이자 반체제 반동분자였다. 그럼에도 이성계에게 감사할 점이 있다. 그로인해 세종이 나왔고 한글이 나왔으니...

경기전을 비롯하여 전주는 전주 이씨들의 본가인터에 과거 조선왕조 500년 이씨들의 세도가 얼마나 대단했던지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성계가 공을 세우고 돌아와 잔치를 벌였다는 울목대도 그렇고, 여러 곳에서 500년동안 친족으로 굴림한 이씨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경기전 바로 맞은 편에 전동성당이 있다. 영화 <약속>의 촬영지로 보다 유명한 곳이란다. 어떻게 경기전 바로 앞에 이 성당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조선의 국력이 쇠퇴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었던 일일 게다. 전주이씨들의 본고장인 전주에, 게다가 이성계를 모신 경기전 바로 앞에 외국의 종교 사원이 세워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단적으로 조선의 패망에 말뚝을 박은 것과 같아 보인다. 일제치하였다지만 당시만 해도 천주교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전주인들에게는 종교적의미보다 정치적 의미가 훨씬 더 컸을 것 같다.  신앞의 평등과 가난한 사람들의해방이라는 기독교 이념을 기억한다면 초절정 계급사회였던 조선의 세력권 중심에 성당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성당이 가지는 힘과 상징은 그 이상의 의미일 듯 싶다.
  조선건국자를 보고 나서자마자 눈 앞에 조선의 망국과 그 이유를 상징하는 성당을 본다는 것이 이채롭다. 아쉽게도 전동성당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이런 시각을 찾아 볼 수는 없다. 게다가 그러한 경기전과 성당간의 첨예한 긴장과 알력은  지나는 사람들의 주위를 끌지 못하는 풍경이 되버린지 아주 오래된 듯하다.  

성당바깥에는 여전히 순교자 추모를 위한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성당의 주요 돌은 예전 전주성에서 나온 돌을 가져와 세웠다고 한다. 이 큰돌을 세우기 위해 부역으로 동원된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생각이 미친다. 프랑스 선교사가 만들었다고 그의 이름은 남아있건만 실제 돌을 나른 중국인들과 신앙인들의 이름은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리베라 호텔에서 이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께서는 서울 태생이신데 미국에서 오래사시다 5년 전에 전주에 내려오셨다고 한다. 전주를 정말 좋아하셨다. 전주에 오실 때만 해도 이렇게 부산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2~3년 새에 북적이는 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상업화로 변질되는 것 같아 우려를 보이셨다.

전주에서 유명한 음식을 내게 물으셨다. 비빕밥, 한정식, 콩나물국밥. 이 중에서 전주비빔밥이 가장 유명하다고는 하나 전주사람들은 비빔밥집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외지인이 찾아오면 데리고 가긴 한다고. 대신 전주사람들은 모두 콩나물국밥 매니아라고 한다. 집에 따라 그 국물 내는 비법이 달라 입맛에 따라 여러 수십파로 나뉜다고 한다. 자주 가신다는 콩나물국밥집에 데리고 가주셨다. 집 근처에 프렌차이즈 전주콩나물국밥집에 익숙해진 탓인지 별 차이를 알진 못했지만 맛있었다.

<전주이야기>에 보면 비빔밥의 연원과 추천 콩나물국밥집이 나와 있다. 일본 영화 <우동>에서 우동순례를 하는 것 처럼, 전주에 몇일 머물며 콩나물 국밥집을 순회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선생님과 헤어진 후 울목대며 동지사며 전주천을 따라 걸었다. 내겐 한옥마을 보다 전주천이 더 인상이 깊다. 8대 풍광은 모르겠지만 전주천은 발을 담고 싶고 멱을 감고 싶은 풍경을 지녔다. <아래 사진은 전주천 하류부근에 있는 징검다리>

조선3대 명주 중에 하나로 배와 생강으로 담았다는 이강주를 한 병 구입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들러 짐을 가지고 나왔다. 전주천을 따라 시외버스터미널을 걸었다. 전주에 와서 내 두발 이외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다. 전주에서의 여정은 그야말로 오일 제로 였다. 덕분에 종아리가 뭉쳐 지금도 아프다. 오랜만에 많은 길을 걸었다. 걷다보니 전주시내에 폐가가 보였다. 한옥에만 투자하지 말고 시 주변 곳곳의 낡은 시멘트집들을 생태주택으로 도시 전체를 생태도시로 가꾸는 시도를 했으면 생각이 든다. 게다가 버스 대신에 시내에 바이오연료로 다니는 전차와 버스를 놓아도 좋지 않을까. 전주는 이것 저것 시도해보기에 딱 적당한 도시 규모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저발전되어 있어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책을 다시 펴보니 가보고 싶었던 곳은 전북대 근처였다. 여러 맛집들과 족욕이 가능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공사중”이라 보지 못했던 곳들, 가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것들에 훗날을 기약한다. 이 선생님께서는 <새벽강>이 라는 술집에 자주 가신다고 하셨다. 전주에는 생활한복을 입은 이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는데 그런 꾼들이 밤마다 이곳에서 모여 들어 들썩거린다고... 그들 틈에 끼여 흥청거리며 얼큰하게 취해보고도 싶다.

2011.02.10

http://foretderobin.tistory.com2011-03-15T16:10:33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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