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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책9

낚지씨의 수상록-몽테뉴 아파트 단지(단지라 할 것도 없는 규모지만)를 나서는 모퉁이에 술집이 하나 있다. 그 술집에선 커다란 수족관을 바깥에 내어 두는데 늘 낚지 한두 분이 들어 계신다. 가끔 지나다 뵈도 이 분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거의 유리벽에 붙어서만 지내는 것 같다. 별달리 유심히 쳐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유리에 딱 달라붙어 헤엄치기를 멈춘 낚지씨를 볼 때면 동병상련이 든다. 당장 언제든 손님이 원하면 제 몸이 토막 나 불에 달구어지는, 오늘 몸과 내일 몸이 다른, 죽을 시간을 받아 놓고 있는 낚지씨 입장에서 보면 어데다 감히 그 고통과 불안을 비견할 수 있냐고 거품을 물지도 모르겠지만. 삼십년을 붙어살아왔다는 회한과 앞으로도 붙어살 수밖에 없다는 예상에 젖어있는 나로서, 게다가 기간만 다를 뿐 죽을 날을 받.. 2010. 9. 2.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울리히 벡 외 이 책은 페이지마다 흥미로운 사례와 인용구, 무릎을 치게 하는 기발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위험사회》의 연장선상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진지한 사회학 저술로 읽을 수도 있고,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도, 신혼 부부가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좀더 깊이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참고서로도,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부모노릇의 깊이와 어려움을 가르쳐주는 교과서로도 읽을 수 있다. 페미니즘과 남녀 평등에 대한 대학생 수준의 기본 저서로서도, 여성운동가들을 위한 진지한 토론 자료로도 이 책은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배은경, 12~13)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강수영, 권기돈, 배은경.. 2010. 9. 1.
모차르트-엘리아스 베토벤 자신은 모차르트처럼 상스러운 음악은 만들지 않는다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했다해서 그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무시하거나 싫어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베토벤은 바흐나 하이든의 작품들을 비롯해 모차르트의 악보를 수집했으며 빌려서라도 계속 공부하고 있었을 정도로 모차르트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베토벤이 그렇게 자신에 찬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둘이 속했던 당대 사회의 급격한 구조변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불과 한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처했던 정치사회배경은 급격히 달라진다. 모차르트가 고용된 제후에게 아침문안을 올리거나 귀족들의 미술시간을 위해 피아노를 반주해 줘야 했던 시대에 속했던 반면, 베토벤은 그가 지나가면 왕족들마저 길을 비켜주는 시대를 만나게 된다. 베토벤의 귀.. 2010. 9. 1.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란드 러셀 러셀의 자서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고 한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세 가지 정열이 나의 인생을 결정하였다. 즉 사랑에 대한 갈망, 인식에 대한 열망,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W, 바이셰델, 《철학의 뒤안길》,이기상 외 옮김, 서광사, 1990, 421쪽) 그에 비해 정열지수가 턱없이 낮은 나는 사랑, 인식, 고통에 대한 민감함 모두가 지지부진하다. 아마 내 삶이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나의 자서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될 것이다. “ 내 인생을 결정한 건 게으름이었다.” 러셀의 책은 제목만 따져본다면 내 자서전의 출판제목으로 적합할 정도다. 하지만 내가 책을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으른 사람이 책을 쓰는 수고를 택할 리가 없을뿐더러, 그럴 능력도 없는 까닭.. 2010.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