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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책

김대중: 아주 오래된 미래의 시간

by 바다기린 2014. 12. 27.



김대중 평전 1김대중 평전 1 - 8점
김삼웅 지음/시대의창



 대통령 김대중. 국방장관 천용택....” 관등성명을 복창하며 외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병 때였다. 김대중 정권 출범 후 반년이 지나 입대했다. 군복무와 어학연수로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간 5년은 내게 거의 공백으로 남아있다.

애초 현실과 유리된 학교교육과 경상도에서 자란 탓인지 나는 김대중은 물론 어떤 정치인인에게도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 이와는 별 상관없이 내게 김대중은 적과 비슷한 경우가 되었다. 97년 대선 당시 나는 국민승리21 후보 선거운동을 쫓아 다녔다. 지금에 와선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가뭇하다. 나와 가까운 선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정말 알지 못했다.

 

 책을 들며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해방공간 당시 생산관계에 대한 김대중의 생각이었다. 비록 서자였다곤 하나 머슴을 거느린 지주출신이었던 그에게 토지모순관계가 어떻게 비춰졌을까 하는 거였다. 지주의 횡포와 소작농의 고통을 적시했더라면 공산주의에 대한 일면적 평가만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건준과 인민위원회에 참여, 장인의 영향, 인민재판에서 살아남은 기억 등에 근거한 공산당에 대한 그의 판단은 체험에 근거한다. 그렇지만 독립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과 토지문제에 있어서 왜 남북한의 지식인 다수가 공산주의에의 경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와 이해가 빠져있어 보인다. 얼토당토않게 일평생 빨갱이 딱지에 시달리며 반공주의자임을 입증해야 했던 그에게 공산주의와의 연계는 노년의 기억에서 조차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 김대중에게 가장 돋보인 점은 그의 판단력과 실용노선이었다. 그는 항상 정세에 대해 적확한 판단을 내렸다. 흑백논리로 움직이는 다수 정치인들과 달리 사태의 핵심에 접근해 문제를 실용적으로 풀려했다. 그는 사태의 비판적 지점을 명확히 하고 항상 대안을 준비한다. 그는 진정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구현한 정치인이었다.

먼저 4.19 이후 장면정권 집권 당시 혁신세력에 대한 비판의 장면이다. 혁신계의 무책임한 남북통일 정책과 활동이 결국 군부에게 빌미를 준다는 지적은 적중한다.

여러분에게 지금의 자유를 준 것이 어떤 정부입니까. ...그런 자유를 보장해 주고 있는 정권을 무너뜨린다면 그 뒤에 등장하는 것은 군사 정권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혁신계에게는 또다시 고난의 세월이 옵니다.”(1129) 곧이어 5.16 쿠데타가 일어났고, 지금까지 한국사회 정치판에 유의미한 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장면은 한일협정 체결 시기다. 야당은 즉각 결사반대를 외치는 반면 김대중은 한일협정에 찬성한다. “문제는 협약 내용이고, 그 내용에 불이익이 없도록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조건을 달고 반대를 해야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주장을 전국민이 매국노라고 비판했지만, 국익에 대한 계산과 군부의 동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전제되어 있었다. “만일 일본 정부와 박정권의 형편없는 내용의 협약에 서명하고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키면 어떡하겠습니까.”(1165) 불행히도 그의 예언은 다시 적중한다. 국교 정상화를 위해 이승만 정권은 20억 달러, 장면정권은 2850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3억 달러에 수교를 맺는다.

세 번째는 67년 총선에서 박정희의 3선개헌을 위한 부정선거 장면이다. 여당은 전국적으로 번지는 부정선거 규탄으로 15~20개 의석을 자진해서 내놓겠다고 했다. 그럴 경우 여당만으로는 개헌이 불가능 해졌다. 김대중은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지방자치제 실시를 조건으로 내걸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민당 지도부는 선거의 전면무효와 재선거를 요구한다. “이래서는 여당의 의도대로 헌법은 개정되고, 지방 자치제는 말도 꺼내지 못할 것입니다.”(1198) 이번에도 예상은 그대로 적중된다.

네 번째 장면은 동아일보 광고탄압과 해직사태다. 그는 <동아일보> 사주와 별도로 접촉해 우선적으로는 서너 명을 제외한 전원을 복직 시키고 몇 달 뒤 모두 복직시키기로 약속을 받아 낸다. “몇 달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니 서너 명 생활비는 복직한 사람들이 걷어 주면 될 것 아니오.” 그러나 해직 기자들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이라며 거부한다. 결국 농성장에 경찰이 투입되고 모두 직장을 잃게 된다. (1342)

퇴임 후 한 여학생의 정치지망생에게 조언을 바란다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건넨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하게 성공하려면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생적 문제의식, 즉 원칙과 철학의 확고한 다리를 딛고 서서 그 기반 위에서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갖춰야 합니다.”(2547)

 

  김대중 자신이 분명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갖춘 훌륭한 정치인이었다하지만 그가 두 번째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며 야당의 대선주자가 되고 자민련과의 연정으로 대통령이 되면서 정치인 김대중과 대통령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갈라진다. 거짓말은 일단 나쁘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필요한 하얀거짓말도 경우에 따라서는 수긍 가능한 거짓말도 있다. 특히 보수언론과 극우세력은 이미 존재 자체가 거짓더미라는 점에서 그들의 김대중에 대한 거짓말 공격은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그들은 그런말을 할 자격이 없다. 더 중요하게 눈여겨봐야할 지점은 김대중이 두 번째 거짓말을 하게 되는 계기 즉 은퇴철회를 하고 정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은데 얽힌 민주화 세력의 무능과 빈약한 세력화일 것이다. 집권 후 김대중의 원맨쇼와 자민련과의 연정도 그런 맥락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자민련과의 연정은 김대중이 집권할 수 있는 유효득표로 작용했지만 집권 세력의 정체성 훼손과 표류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냉전적 사고가 우세한 당시 정치지형에서 보수세력과의 연정은 용공시비를 무력화시키고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데도 방패막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비록 썩은 방패였지만 쓸모는 유효했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치가 순수한 이념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성공한 상인의 현실 감각이 더욱 노련하게 발휘된 마지막 한 수였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최대 업적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남북평화를 위한 실질적 초석을 놓은데 있다. 평전 2권 앞쪽에 나열된 대통령으로서 업무수행을 읽어 내리동안 지쳐가다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팽팽한 긴장이 되살아났다. 평양에 내린 대통령의 감격처럼 내게도 울컥울컥 뜨꺼운 것이 올라왔다.” 김대중은 과연 김정일을 어떻게 읽을까 궁금했다. 또한 브루스 커밍스가 김정일 코드에서 밝힌 김정일의 합리적인 면모를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게 충격이었던 것은 미군 주둔에 대한 김정일의 판단이었다. 예기치 못했다.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언론 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2290~291)

 

김정일은 북한이 처한 상황뿐만 아니라 이후 전개될 한반도와 주변 4강의 역학관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합의문에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문과 2차 정상 회담 개최명시를 두고 일어난 갈등은 합의문 서명에 김정일 자신의 수표(서명)여부를 두고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원장의 집요한 설득으로 김정일이 한 발 물러선다.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라 그런지 무척 집요하군요.” 김정일의 뼈있는 농에 김대통령의 대받아친 농이 진국이다.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 (2293)

 

김정일은 만만치 않은 식견과 협상력을 가진 인물임에 분명했다. 더구나 대화주제가 사방으로 튀면서도 논리적 일관성을 견지하는 감정적으로 자유분방한 면이 있어 협상자로서는 아주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정상회담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읽어낸 김정일은 유창. 흥분한 빛. 장황한 말. 흔쾌한 동의. 경청. 예의. 굳어진 얼굴. 망설임. 미세한 동요.’ 를 오갔다. 하지만 회담은 김대통령의 술회처럼 남쪽이 얻어 낸 것이 훨씬 많았다. 김대통령은 노련했다.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2315)

 

김 대통령의 북한과 국제 정세에 대한 식견은 탁월해 보인다. 부시의 집권으로 역풍을 맞은 남북관계를 다시 재개하려는 김대통령의 구술 편지에 담긴 견해는 당시의 국제정치 지형을 정확히 꿰뚫고 북한이 나아갈 방향을 진심을 담아 제시하고 있어 적지 않은 감동이었다. (p473~4) 또한 동티모르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청하는 노력과 결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는 지원은 이후 노벨평화상 수상에도 중요한 준거가 되었다.

 

그의 금융 전략은 한국의 어떤 과거 정부보다 세계 시장 개방에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한국 국민이 누리는 성장의 시대가 이때 열린 것입니다.”(114)

 

  빌 클린턴의 추천사에 적힌 이 말이 처음부터 거슬렸다. 취임과 함께 IMF 사태 수습 과제를 맡은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경제 노선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택한다. 빌클린턴의 축사는 따지고 보면 IMF와 미국 측 이해관계를 그대로 이행해 준 김대중에 대한 미국 금융자본의 감사의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런 노력은 여과 없이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진다.

  무리한 자본시장 개방과 민영화,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세트로한 경제개혁은 실업자의 양산과 노동빈곤층을 양산했다. 구조적으로는 주주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기업의 장기적 투자가 사라지고 단기수익만 노리는 행태가 고착되었다. 가장 쉬운 노동력에 대한 설거지로 인건비를 줄이는 비정규직화가 전사회로 파급되었다. 그 결과 김대중 정권하에서 사회적 불평등은 김영삼 정권 때 보다 더욱 심해졌다. 불평등 수치를 말해주는 지니계수는 OECD기준을 적용할 경우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0.298에서 0.358로 훨씬 악화됐다.

  김대중 정권의 4대보험 정비와 기초생활보장제 등의 복지제도 정비는 지난 정권과의 차별화되지만 사회안전망으로는 작동하기에는 죄송한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인권이다라는 일갈에도 불구하고 복지란 일면 가진 자들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일이며 또한 없는 자들의 밥그릇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2351)라는 발언에는 시혜적 복지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김대중의 전회에 있어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의 서술이다.

 “199811월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대외경제조정위원회는 통상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터키 등 4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이를 미국, 일본, 아세안으로 확대하기로 했다.....세계 경제가 대륙별로 블록화하는데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은 FTA밖에 없었다.”(2514)

 

 눈이 의심스러웠다. 한미 FTA는 단지 노무현 정권의 갑작스런 대국민 사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쌀 개방과 주요농산물 개방에 단호히 반대하던 김대중은 간데없고 말년에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단지 자유무역을 하자는 발언이 FTA를 하자는 발언으로 나온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세계 전체와 FTA를 맺자는 기획과 신자유주의 노선은 김대중에 대한 역사의 평가에서 가장 치명적 비판이 될 것이다.


 “농민과 노동자의 희생 위에 대기업들의 특혜를 보장하는 것이 박정희 정부 경제의 본질”(1222) 이라던 김대중의 비판은 화살의 방향을 달리해 농민과 노동자의 희생 위에 대기업과 해외자본의 특혜를 보장한 것이 김대중 정부 경제의 본질이라는 비판으로 김대중 정부의 심장을 관통할 것이다.


  광복이후 현대사는 여전히 외세로 인한 굴곡이 크지만 김일성과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분단체제로 압축된다. ‘적대적 공범이라고 상징되듯 남북은 상호 적대적 세력의 대치를 빌미삼아 일인권력체제를 구축한다. 그 둘은 죽고 없지만 그들의 유산은 여전히 한반도에 그늘을 드리고 있다. 지금 북에서는 김정일이 할아버지를 빼다 박은 김정은의 세습으로 분주하다. 남에서는 박정희를 롤모델로 정권을 잡은 이명박이 삽질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차기 대선주자로 치맛바람을 일으킨 지 오래다. 분단체제의 상속자들은 여전히 그 애비를 닮고 싶어 혈안이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은 여당과 정권의 실정으로부터 반사이익을 얻거나, 표를 얻기 위해서만 여당과 차별화를 내세운다. 그들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는 관료집단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앞에서는 다투는 척 하지만 뒤로는 여당과 붙어먹는다. 떨어지는 콩고물과 나눠먹기에 재미가 쏠쏠해보인다. 이들도 민주당 윗세대를 그대로 상속한 모양이다.

  

  김대중을 읽는 것은 한반도 현대사를 읽는 것과 같다. 교통사고, 납치, 사형선고, 연금 몇 차례의 죽음과 오랜 수감생활을 극복한 김대중의 당선만으로도 암울한 독재의 시대가 끝나고 비로소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경제와 달리 압축 성장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이런 측면에서 김대중의 집권은 김대중 개인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서구 민주주의 정착을 볼 때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인내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여전히 우리에게 미래의 시간으로 저 멀리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남북평화 세 바퀴로 굴러가자던 김대중의 기획은 한 축의 고장과 한 축의 부족으로 좌초되었다. 김대중의 성공과 실패를 되새기며 우리는 이제 세 바퀴가 아닌 네 바퀴로 가는 한국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남북평화, 사회경제, 복지사회가 그 네 축이여야 한다. 민주주의와 남북평화를 김대중의 유산으로 이어받고, 시장경제의 오류를 수정할 사회경제로의 전환과 복지사회가 나머지 두 축이다. 이 네 바퀴로 안전하게 휴전선을 평화선으로, 분단체제와 불평등사회를 평화체제와 평등사회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대중은 우리에게 현재의 시간인 동시에 성찰하고 반성해야할 아주 오래된 미래의 시간이다.


  역사의 무게를 감당한 그의 불편했던 다리에 가늠할 수 없는 빚을 졌다. 첫 물방울은 정말 용감했다. 비로소 마지막 물방울이 꿈꿀 수 있게 되길... 감사하다.  


2010년 겨울...



http://foretderobin.tistory.com2014-12-27T13:24:45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