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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드라마/영화

시효경찰

by 바다기린 2010. 9. 3.

일본 드라마를 유치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당한 기분이다.  여타 드라마들에 비해 짜임새 있는 구성과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 조금 뒤져봤더니 매회 악역으로 나오는 인물들도 숙성된 주․조연들이 나온다. 내 눈에도 설깃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조제 호랑기 그리고 물고기들>의 치즈루, <노다메 칸타빌레>의 하리센.  과장이 눈 익다 했더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노다메의 아빠로 잠시 나왔던 분이다.  능글거리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김미화를 연상시키는 아줌마는 그 존재만으로 아주 즐겁다. 노처녀 여경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쩌다 오다기리 죠가 나오는 영상을 계속 보게 되었다. 연기의 압권은 역시나 오다기리다. 폼 잡는 연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유레루에선 밉상이었는데 청승스러우면서도 재밌다. 처음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드라마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을 다룬다. 사건이후 15년이 지난 다음 시효과 소속 키리야마가 취미삼아 시효사건들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드라마의 후반부에 살인의 동기 다섯 가지를 드는데, 원한, 원한을 삼, 연정, 이해관계 ...(하나가 생각이 안 난다 통과 ).   살인이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면식범의 소행이다. 드라마 속 살인도 대부분도 가족 혹은 준가족적 관계의 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아내, 남편, 형제, 자매, 사위 등 피해자의 가장 가까운 인물이 가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쳐 죽일 만한 사연은 없다.  어이없게 혹은 우연히, 다분히 충동적으로 살인이 이루어진다.   이런 사건들이 미스테리가 되어버린 것은 가까움의 복잡한 관계를 외부의 시선으로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 키리야마(오다기리)는 단단히 얽힌 사건 당시의 지형에서 벗어나 관계들이 느슨해지거나 정리된 다음 수사하기에 그 틈을 헤집을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범죄자를 잡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인 여느 범죄 드라마와 달리 은닉된 범죄행위를 재수사하고 고백하는 가운데 용서와 속죄의 기회를 부여한다. 살인에 사연이 없을리 없다.  그렇더라고 해도 모든 살인자가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살인자의 경우에 살인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주변인들에게 떳떳하게 내가 누구를 죽였노라고 정직해 질 수 없는 노릇이니까. 키리야마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카드는 역으로 앞으로도 가해자 자신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키리야마가 말한 나무처럼 시간은 헛되이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은 허술하게 기억을 놓아주는 법이 없다. 시간은 살인의 감각을 무디게도 하지만, 사건과 자신을 정직하게 만날 수 있는 여유도 가능케 한다. 속죄는 그 시간에 대한 기억과 삭힘으로 가능하다.

  일본색이 그다지 거북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웃으면서, 조금 긴장하면서 종종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

  한 가지,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집단화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들게 하는데, 한편으로는 정답고 귀여우면서도 거리를 두게 한다.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난 정말 재미없는 사람인 듯. -.-